[테크] 잊혀진 수동변속기 손맛과 발맛, 12기통 페라리에서 다시 맛볼 수 있다! –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의 마법

4–5분
  • 12칠린드리 바탕으로 수동변속기의 물리적 조작감을 살리는 기술 더한 한정 모델
  • 기어 레버와 클러치 페달 추가해 수동 변속 재미 더해 … 자동 모드로도 몰 수 있어
  • 페라리 첫 차 배기량 상징하는 1,499대 한정 생산

페라리가 2026년 7월 4일에 12칠린드리 마누알레(12Cilindri Manuale)를 공개했습니다. 이미 팔고 있는 앞 엔진 뒷바퀴 굴림 2도어 쿠페인 12칠린드리를 바탕으로 만든 특별 한정 모델이죠. 이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모델 이름에 꼬리표처럼 붙은 ‘마누알레’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마누알레는 ‘손으로 하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형용사입니다. 즉 수동이라는 뜻이죠.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 (사진제공: Ferrari)

12칠린드리 마누알레의 운전석에 앉는 사람은 영락없는 수동변속기 차에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수동변속기가 달려 있던 옛 페라리 차처럼 금속 질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H자 모양 변속 게이트, 머리에 게이트 표시가 되어 있는 둥근 기어 노브, 브레이크 페달 왼쪽에 당당히 자리를 잡은 클러치 페달까지. 운전석 주변에 달린 장치들 모두가 ‘나는 수동변속기 차’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수동변속기’ 아니라 ‘수동변속기의 손맛과 발맛’ 되살려

요즘 나오는 페라리 차들은 모두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DCT)를 달아, 변속이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운전자가 기어 단을 직접 바꾸려면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을 조작해야 하고요. 페달도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두 개 뿐입니다. 수동변속기 차라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막대 모양의 기어 레버와 클러치 페달은 이미 페라리 차에서 사라진 지 오랩니다. 페라리 뿐 아니라 요즘 시중에서 살 수 있는 대부분의 차들이 그렇죠.

하지만 페라리 차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수동변속기가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최신 기술의 힘을 빌어, 그리고 페라리의 전통적 감각을 더해 ‘수동변속기‘가 아니라 ‘수동변속기의 손맛과 발맛’이 부활한 거죠.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 (사진제공: Ferrari)

12칠린드리 마누알레의 변속기는 기계식으로 변속기와 연결된 기어 레버와 클러치를 사람이 손으로 조작하는 고전적 수동변속기가 아니라, 12칠린드리 일반 모델에 쓰이고 있는 8단 DCT를 마개조한 것입니다.

‘손맛‘을 살리는 기어 레버와 ’발맛‘을 살리는 클러치 페달은 물리적으로 작동하지만, 운전자의 기어 레버와 클러치 페달 조작은 센서를 통해 변속기에 신호를 보내 물리적 작동으로 이어지는 ’바이와이어(by-wire)’ 방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레이싱 시뮬레이터의 조작장치를 실제 차에 깔아놓은 개념이랄까요.

운전자의 조작을 전자 신호로 바꿔 DCT 작동하는 ‘바이와이어’ 방식

그래서, 운전자는 손발의 조작감을 느끼고 싶다면 수동 모드를, 변속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몰고 싶다면 자동 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만 밟은 상태에서 시동을 걸면 일반 자동 주행 모드로 전환되고, 클러치 페달을 함께 밟은 상태에서 시동을 걸면 수동 모드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페라리가 이 ‘가짜’ 수동변속기에서 집요하게 파고든 것은 수동변속기의 감성입니다. 사실 요즘 ‘순혈주의’ 자동차 애호가들이 수동변속기에서 가장 크게 원하는 것이 바로 그 감성이죠. 과거에는 자동변속기가 운전 편의성을 위해 효율이나 성능을 타협해야 하는 존재였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 (사진제공: Ferrari)

특히 수동변속기 구조를 활용한 DCT는 자동변속기의 여러 단점을 극복해, 스포츠카들에도 잘 어울립니다. 오히려 DCT는 변속 속도는 숙련된 운전자가 수동변속기를 조작할 때와 비슷하거나 더 빠르고 변속 실수 가능성은 훨씬 더 낮아서, 실제 가속 성능이 수동변속기보다 나은 경우도 흔하고요.

그래서 사실상 지금 기준으로 수동변속기가 DCT나 성능 좋은 자동변속기보다 나은 점은 조작감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라리가 12칠린드리 마누알레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도 그 조작감이고요. 기어 레버와 클러치 페달 모두 실제 수동변속기 차를 다룰 때처럼 물리적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를 감성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수동변속기의 감성에 초점 맞춰 기어 레버・클러치 페달 만들어

기어 레버는 특수 프로파일로 설계된 회전 드럼이 예압 메커니즘과 함께 작동해 반발력을 만들었다가 풀면서 노브로 ‘딸깍’하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기어를 게이트에 넣을 때 버티는 느낌이 들다가 어느 순간 ‘훅’하고 들어가는 느낌을 살린 거죠. 이때 게이트 안에 있는 센서는 자기장을 이용하여 레버의 위치를 ​​감지합니다.

클러치 페달도 페달을 밟는 압력을 조절해 기계적 조작감을 구현했습니다. 예압 스프링, 캠, 롤러로 이루어진 기계적 시스템은 실제 클러치 페달 작동 때의저항 곡선을 재현해, 페달을 놓으면 반발력이 커지고, 클러치가 작동하는 지점부터는 반발력을 줄입니다. 페달을 조작하는 데는 약 13.6kg의 힘이 필요합니다.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 (사진제공: Ferrari)

심지어 페라리는 실제 수동변속기를 잘못 조작했을 때의 반응도 재현했습니다. 운전자가 클러치 페달을 잘못 조작하면 출발할 때 차가 움찔거리거나 시동이 꺼질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는 최적 회전수가 아닐 때도 변속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다만, 6단에서 1단으로의 급변속처럼 변속기를 망가뜨릴 수 있는 경우에만 기어 레버가 잘못된 게이트로 들어가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차단합니다.

수동 변속은 전진 1단부터 6단까지와 후진만 할 수 있습니다. 전진 7단과 8단은 자동 모드에서만 쓸 수 있고요. 7단과 8단은 초고속 정속 주행을 위해 마련된 단이어서, 일반적으로 변속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주행 조건에서는 여섯 단 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도 페라리의 수동변속기는 6단까지만 있었고요.

12칠린드리와 같은 성능 … 1,499대 한정 생산해 판매

V12 6.5L 자연흡기 엔진 자체는 12칠린드리와 똑같습니다. 830마력인 최고출력도, 69.2kg・m인 최대토크도, 9,500rpm에 이르는 한계 회전수도 같습니다. 변속기도 스티어링 휠 뒤에 변속 패들이 없다는 점을 빼면 기본적으로 같고, 수동 조작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수동 모드에서도 충분히 빨리 변속할 수 있기 때문에 2.9초인 시속 100km 정지 가속 시간도 같다고 합니다. 기술 좋은 운전자라면 힐앤토 기법을 쓰면서 몰 수도 있겠죠.

많은 공을 들여 진짜처럼 구현했다는 조작부가 정말 제맛을 내는지 궁금하긴 한데, ‘옛날 그 맛’인지는 알 수 없을 듯합니다. 저는 수동 페라리를 몰아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페라리 12칠린드리 마누알레 (사진제공: Ferrari)

수동변속기가 마지막으로 들어간 페라리는 12칠린드리의 조상뻘인 599 GTB 피오라노였습니다. 수동 모델 판매량이 많지 않아, 지금은 중고로도 구하기 어렵죠. 명맥이 끊긴지 14년여 만에 12기통 페라리에서 수동변속기 손맛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 건 그 자체로 재미있고도 반가운 일입니다.

말만으로도 군침을 흘리게 되는 이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소수의 부유한 페라리 열성 팬들입니다. 페라리는 12칠린드리 마누알레의 생산량을 1,499대로 못박았는데요. 1947년에 페라리가 처음 만든 차인 125 S의 12기통 엔진 배기량을 상징한다고 합니다만, 한정 생산 모델치고는 좀 많다는 느낌도 드네요.

차값은 기본 약 59만 유로, 발표시점 환율 기준으로 우리돈 약 10억 3,000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페라리의 테일러 메이드 프로그램으로 여러 부분을 맞춤 주문할 수 있으니, 실제 값은 그보다 더 비싸겠죠.

응답

  1. 더 토크 | The Torq – 정통 모빌리티 미디어님, 요즘 세상에 12기통 엔진과 수동변속기의 조합이라니 상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돋네요! 글을 읽는데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직접 넣을 때의 그 묵직한 손맛과 발맛이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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